거조사와 은해사
은해사는 신라 말기 혜철국사가 창건한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입니다. 처음에는 해안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수차례의 화재로 인해 건물들이 소실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은해사의 건물들은 대부분 근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지만, 그곳에는 1,200년이 넘는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은해사 보다 먼저 지어진 거조사는 은해사의 암자로 편입되어 거조암으로 불리다가 2021년 다시 거조사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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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의 창건과 변천
은해사는 신라 말기 혜철국사가 창건한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입니다. 처음에는 해안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수차례의 화재로 인해 건물들이 소실되고 재건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은해사의 건물들은 대부분 근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지만, 그곳에는 1,200년이 넘는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은해사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거조사의 영산전
거조사의 중심 건물인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어진 소박하고 간결한 건축물입니다.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은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으며, 고려 말·조선 초 주심포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산전의 건축적 특징
영산전은 앞면 7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꾸며졌습니다. 맞배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하고 있어 단아하고 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은 영산전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주심포 양식은 기둥 위에만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부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고려 말·조선 초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입니다. 영산전의 주심포는 간결하고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줍니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영산전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을 넘어 우리나라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려 말·조선 초 주심포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영산전은 그 시대의 건축 기술과 미적 감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은 불교 미술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은해사와 거조사의 의미
은해사와 거조사는 단순히 불교의 성지가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소중한 유산입니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은해사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거조사는 우리에게 역사와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특히 영산전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맺음말
은해사와 거조사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여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영산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솜씨를 느껴보는 것은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은해사와 거조사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곁에 남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주기를 바랍니다.